★ 독보적 에세이스트, 곽미성 작가 신작
★ 문지혁 소설가, 심혜경 번역가 추천!

낯선 외국어가 일상의 언어가 되기까지
혼란과 매혹 스무 해의 기록

전작 『다른 삶』 『외로워서 배고픈 사람들의 식탁』 『그녀들의, 프랑스식, 연애』를 통해 에세이스트 특유의 섬세함과 이방인의 예리한 감각으로 프랑스 안팎을 소개해 온 곽미성 작가의 신작이 출간됐다. 『언어의 위로』는 낯선 외국어를 체화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작품으로, 프랑스어 해방 일지이자 모국어가 아닌 언어가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관한 내밀한 기록이다. 의미가 되지 못하는 이질적인 소리가 너무나 피로해서 수영장 물속으로 몇 시간씩이나 도망치던 유학 생활 초기부터 자신의 프랑스어 실력을 더는 의식하지 않게 된 시기를 거쳐, 모국어와 프랑스어를 오가며 나의 세계를 확장해 가는 과정은 어떤 드라마보다 감동적이다. 작가의 눈에 서서히 들어온 프랑스 문화와 프랑스인에 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책의 외연을 한층 더 넓힌다. 다른 삶을 꿈꾸는 이, 외국어라는 미지의 문 앞에 선 이,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는 이에게 속 깊은 ‘언어의 위로’를 전하는 책이다.




 출판사 리뷰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는, 남의 나라 말을 하며
외국에서 산다는 것에 관하여

외국에서의 삶은 많은 이들의 로망이다. 그곳이 ‘프랑스’라면 더없이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곽미성 작가는 배낭여행으로 떠난 프랑스에서 덜컥 유학을 결심한다. 자신의 도피처였던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어떤 고생이든 감수하겠다는 다짐으로. 10대의 곽미성은 알지 못했다. 외국에서의 삶은, 더 정확히는 ‘삶의 질’은 외국어 능력에 달렸다는 것을. 프랑스어로 인해 자신이 앞으로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도. 여행자가 아닌 유학생으로 돌아온 프랑스는 ‘현실’이었다.

무려 24년. 이방인의 시간은 어느덧 한국에서 나고 자란 세월을 훌쩍 넘었다. 생존을 위해 시급히 채워 넣어야 했던 프랑스어를 일상의 언어로 쓰게 된 지금, 저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외국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는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무엇보다 외국어는 모국어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고. 다만 곽미성 작가는 괴테의 문장을 가져와 외국어를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일곱 개의 언어를 구사했고, 외국어로 글을 쓰며 삶의 문제를 해결해 갔다는 독일 작가 괴테는, “외국어를 통해 자신을 바라볼 때, 외국어는 그 자체로 거울이 된다”고 썼다.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모국어도 알지 못한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괴테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책은 거울이 된 외국어 이야기다. 나와는 아주 먼 세상의 말이라 여겼던 외국어가 결국 내가 가진 언어를 돌아보게 하고 나를 확장시킨 이야기. (10쪽)

『언어의 위로』는 결과보다 ‘과정’에 시선을 두는 책이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오랜 시간과 노력에 걸쳐 몸에 새길 때, 한 사람의 삶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를 밀도 있게 보여준다. 20여 년간 누적된 경험을 모은 저자의 글은 국제 연애, 외국어 공부 등을 다루는 짧은 영상에서는 볼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한다. 단 몇 줄로 정리되는 프랑스인과의 연애 장/단점, 프랑스어 완전 정복 노하우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최고의 외국어 공부법은 외국인과 사귀는 것이라는 농담 같은 말은 절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곽미성 작가의 이야기는 아주 멀리 또 깊이 나아간다.

 “나는 (프랑스인 남자 친구) R이 자주 쓰는 단어들, 대강의 의미는 알지만 정확한 뜻은 모르던 단어들을 사전에서 찾아 확인하기 시작했다. 더 나다운, 더 내 마음과 닮은, 더 내 생각에 가까운 단어를 고민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이슈에 대해, 인물에 대해 그의 의견을 들으면, 반문하고, 확인하고, 이해하고, 내 생각을 전개했다.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독립하기 위한 일종의 투쟁이었다. 우리의 관계는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다른 쪽으로 기우는 과정을 거치면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갔다. 관계 속 나의 영토가 분리되고 확장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도 다시 치열해졌다. 우리의 관계도 그때부터 성숙해졌다고 나는 믿고 있다. 각자가 자신의 독립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어른의 관계. 나의 프랑스어도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정말 내 것인, 나의 외국어는 그렇게 말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79쪽)

알면 알수록 까다롭지만 미워할 수 없는
프랑스, 프랑스어, 프랑스 사람들

프랑스 생활의 토대 위에 쓰인 이 책은, 프랑스어를 모르는 이들마저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직접 부딪치고 경험하며 알게 된 프랑스 특유의 문화와 화법을 곁들여 언어 너머의 풍경까지 생생하게 전하기 때문이다. 곽미성 작가는 낭만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의 진정한 낭만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표현에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 사람들은 내 심장(mon cœur), 내 보물(mon tresor), 내 벼룩(ma puce, 보호해 줘야 할 아주 작은 존재라는 의미) 같은 애칭으로 ‘천연덕스럽게’ 서로를 부른다. 한창 열애 중인 커플이나 신혼부부가 아닐지라도.

 나의 시어머니는 함께 산 지 50년이 다 되어가는 자신의 남편을 여전히 새끼 고양이(minou)라고 부르고, 아들은 벼룩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식이다. “내 새끼 고양이, 화장실 청소 좀 해”, “내 벼룩, 왜 이렇게 얼굴이 안 좋니? 저녁에 뭐 먹고 싶어?” (54쪽)

그렇다고 프랑스어를 낭만의 언어로 속단하긴 이르다. 긴 대기 끝에 만나게 된 은행 직원이 자신의 두 눈을 바라보며 건네는 말(이제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Je suis a vous!)을 듣고, 세금 연체나 보험료 인상을 알리는 고지서의 끝인사(당신을 읽을 날을 기다리며, 저의 각별한 감정을 수락해 주시길 간청합니다 Dans l’attente de vous lire, je vous prie d’agreer l’expression de mes sentiments distingues)를 읽으며 저자는 알게 된다. 프랑스 사람들은 별다른 감정을 담지 않고도 이토록 낭만 넘치는 말들을 한다는 걸. 

 그냥 하는 무엇도 아름답게 치장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 과도하고 그저 형식일지언정 사랑이 겉으로 드러나야 행복한 사람들의 언어가 프랑스어다. 그리하여 알면 알수록 까다로운 이 외국어를 나는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는 것이다. (55쪽)

낯설고 피로했던 소리가 온전한 의미가 되어
정확한 위로로 와닿을 때

아는 이 하나 없는 타국에서, 입을 뗄 때마다 의식적인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외국어를 하며 나의 자리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는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언어가 서툴러서 혹은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무수한 말들을 삼켰을 것이다. 이런 서러운 현실에도 계속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삶의 고비마다 쓰러진 마음을 끌어 일으켜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곽미성 작가는 고백한다.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도 한달음에 달려갈 수 없어 이미 재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나는 당신을 생각합니다”라며 슬픔을 헤아려준 덴마크 문화원장. 퇴직 전 마지막 진료 날, “우리는 서로가 늙어가는 것을 지켜보았군요”라는 인사를 전하며 15년간 이어온 인연을 실감케 해준 주치의. 이들이 진심으로 건넨 프랑스어가 완벽한 위로로 와닿았던 순간들이, 곽미성 작가를 지탱해 온 것이다.

그럼에도 지울 수 없는 결핍과 그리움은 모국어로 채운다. 출근 전 새벽마다 모국어로 글을 쓰고, “이미 몸과 마음속에 스며들어” 있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언어”인 모국어로 쓰인 책들을 읽으며. 두 언어에서 받은 위로로 곽미성 작가는 꾸준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다른 삶을 꿈꾸며 기꺼이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언어의 위로’를 전하면서.




 저자 소개 

곽미성
영화 공부를 위해 파리에 온 이후로 스무 해 넘게 프랑스어를 쓰며 살고 있다. 파리 1대학과 7대학에서 영화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전공과 관련 없는 직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매일 새벽에 일어나 출근 전까지 모국어로 글을 쓴다. 파리에서 가장 사랑하는 일은 걷기. 프롬나드(promenade), 플라네(flaner) 등 ‘산책’을 의미하는 모든 프랑스어 단어를 좋아한다. 지은 책으로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다른 삶』 『외로워서 배고픈 사람들의 식탁』 『그녀들의, 프랑스식, 연애』, 옮긴 책으로 『파노라마』 『파리지엔은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가 있다.




 추천사 

모국을 떠나 낯선 나라에 살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외국어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쓰리고 끝없는 일인지를. 책을 읽으며 나 역시 지난 유학 시절이 떠올라 여러 번 멈추어 서야만 했다. 울고 웃고 부끄럽고 황당했던 어떤 순간의 기억들 때문에.
그러나 동시에 외국어를 배우고 쓴다는 것은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던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단순히 프랑스 이민자의 경험담이 아니라, 괴테의 말처럼 우리를 비추는 ‘거울’로서의 외국어를 통해 감춰져 있던 나 자신과 세계의 이면을 여는 열쇠가 되어준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유려한 문체, 곳곳에 숨겨진 위트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내 안에 있었으나 알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에 도착하게 된다. 자신만의 고양이를 찾아 헤매는 세상 모든 이민자에게, 그러니까 바로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문지혁 소설가, 『초급 한국어』 저자

50대 중반의 나이에 비로소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한 나, 그리고 10대 후반에 떠난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20년 넘게 프랑스에 머물며 일하고 있는 곽미성 작가와의 접점을 찾아본다면, 제2외국어로 선택할 수 있는 독일어와 프랑스어 중 독일어 칸에 동그라미를 그렸다는 정도? 그런데 지금 나는 ‘프랑스어 해방 일지’가 될 그녀의 책 때문에 좀 더 빨리, 더 많이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다는 초조한 마음과 뜨거운 열망 사이를 오가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부드러운 물결처럼, 우리를 배움의 방향으로 기분 좋게 밀어줄 책이다.
심혜경 번역가,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저자




 본문에서 

그로부터 스무 해가 넘게 지났다. 프랑스어를 배우고, 대학에 다시 들어가고, 영화를 만들고, 논문과 시나리오를 쓰면서 20대를 훌쩍 보냈고, 직장에 다니고, 먹고사는 일로 지금에 이르렀다. 많은 일을 한 것 같지만, 돌아보니 자유와 해방 그리고 영화의 나라에서 내가 한 일의 대부분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7쪽)

성인이 되어 외국어를 배우는 일이 어린 시절보다 힘든 이유는, 비단 감퇴한 기억력이나 감각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우리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가 아닌데 아이의 수준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처지, 몸만 어른인 아이로 무시당하거나 차별받는 상황이 성인으로서 외국어 배우기의 진짜 어려움이 아닌가 싶다. (59~60쪽)

뼈 아프지만, 무엇이든 배우는 일에는 모자란 자신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 동반된다. (86쪽)

화법은 사회를 드러낸다. 프랑스에서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한 한국인 지인은, 아이의 한국어와 프랑스어 구사 방식을 보면서 두 언어의 차이를 크게 느낀다고 했다. 아이가 한국어로 말할 때는 목소리 톤도 높고 감정을 극적으로 발산하는 데 반해, 프랑스어로 말할 때는 목소리가 차분해지고 이성적인 표현을 많이 쓴다는 것이다. 유치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이가 프랑스어로 “나는 ~을 할 권리가 있어” 같은 말을 하기 시작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요즘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있는 나의 시아버지가 떠올랐는데, 최근 이런 질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사람들이 소리를 많이 지르더라. 실제로도 그러니?” (97~98쪽)

옷차림과 스타일뿐만이 아니었다. ‘취향 평가’는 내 전공 분야인 영화에서도, 또 음악, 미술 등 모든 장르에서 계속됐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가 지도 교수로부터 “아니, 그런 도덕 교과서 같은 영화를 어떻게…”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프랑스 친구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가 “그 영혼 없는 모조품 같은 곡은 다시 안 들으면 안 되니?”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섬세한 이 도시의 사람들이 부담스러워졌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으나, 초라한 취향의 내게 이곳은 ‘춥고도 험한 곳’이었달까. (153쪽)

(스테판의) 시사회에 다녀오고 한참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 생활의 안정을 위해, 아니 생존을 위해 버려둔 것이 떠올라서. 내가 버린 것과 지킨 것, 스테판이 버린 것과 지킨 것에 대해 각자의 선택을 비교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그가 벌여왔을 마음속 사투를 그려보았다. 하나둘씩 영화 일에서 멀어지는 친구들을 보면서, 밥벌이를 위해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남몰래 회의하는 밤이 그에게도 무수히 있었을 것이다. (185~186쪽)

Chacun cherche son chat(각자 자기의 고양이를 찾아다닌다, 샤캉 셰르쉬 쏭 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문장을 꺼내 보면서 우리 모두 찾는 고양이가 다르고, 고양이를 찾는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내가 현재의 일터에서 경험하는 일들, 현재의 고민도 내 고양이를 찾아가는 나만의 과정이 될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새벽마다 일어나 글을 썼다. 습관처럼 써오던 일기 같은 기록이 아닌, 주제가 있는, 세상에 공개하기 위한 글. 그 시기에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출근 전 최소한 두 시간, 새벽에 글을 쓰는 일이 내가 가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내 고양이를 찾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187쪽)

“자기야, 받을 줄 모르면 주기도 힘든 거야. 그런 인생은 재미없잖아?” (205쪽)

모국어의 무게로 가방이 무거워질수록 국경을 넘는 이민자의 마음은 든든하다. 이방인의 처지가 서러워 잠들지 못하는 밤이 오면, 이 책들을 꺼내 떠나온 곳의 사람들이 지어놓은 아름다움을 더듬고, 마음을 덥힐 것이다. 그렇게 모국어의 힘으로 외국어의 세계를 향해 한 발, 또 한 발 나아가겠지. (2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