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보다 더 도깨비 같은 탐욕스러운 인간과
그 속에 섞여 살아가는 도깨비.
그런 도깨비를 사냥하는 한 남자의 가슴 시린 이야기.
이 책은
“물건이 오랜 시간 사람 손을 타면 기묘한 어떤 것이 된다고 합니다.”
오래된 물건에 혼이 깃들어 태어나는 ‘도깨비’.
인간의 얼굴과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며 살아가는 도깨비는 죽으면 돈이 되는 골동품으로 변한다.
그런 도깨비를 사냥해 생계를 이어가는 사냥꾼 ‘김철수’와 그를 아들처럼 살피는 헌책방 ‘홍사장’. 그리고 귀신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수상한 남자 ‘고씨.’
비 오는 어느 밤, 이들 셋은 우연한 기회로 술자리에 마주 앉게 되는데….
도깨비보다 더 도깨비 같은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이야기
“…철수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애는 운이 없었어요. 남들과 조금 다르게 태어나서 사는 내내 곤란한 일을 자주 겪었죠. …특히 도깨비들에게 오랫동안 시달렸답니다. 어느 날 더는 못 참고 덤벼들었는데 도깨비가 죽어버렸대요. 정신 차려 보니 도깨비가 죽은 자리에 사체 대신 녹슨 가위가 놓여 있더랍니다….”
사람의 몸에 도깨비의 피가 흐르는, 반은 인간이고 반은 도깨비인 ‘김선생’ 김철수. 김철수는 골동품을 수집해 생계를 이어간다. 그는 오래된 물건들이 세월을 견디면 도깨비가 된다고 말한다. 골동품은 혼이 깃들어 도깨비가 된 오래된 물건인데, 도깨비를 죽이면 이 골동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제멋대로 귀신 골목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스산한 골목길에 모두가 떠나고 홀로 남은 헌책방이 있다. 오랜 기간 같은 자리를 지키며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홍사장. 그는 골동품을 수집해 오는 김철수를 아들처럼 걱정하며 보살핀다. 그리고 귀신 골목을 늘 어슬렁거리는 고씨는 의문스러움이 한가득하다. 그런 그들이 비가 오는 어느 스산한 밤에 우연히 마주 앉아 술과 함께 김철수가 수집해 온 나침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나 이 나침반은 단지 세월이 오래된 나침반이 아니었다. 이 나침반은 사람을 홀리는 도깨비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떠난 골목에는 여전히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리고 오래된 이야기 속에는 인간과 닮은,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존재들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사냥꾼 이야기》는 낡은 골목의 헌책방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기묘하고도 서늘한 한국적 판타지 미스터리다. 또한 거창한 판타지보다 골목의 온기와 쓸쓸함을 품은 이야기이며 한국적 도시 괴담과 미스터리, 인간 심리를 결합한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작품 속 큰 줄거리는 죽은 사람 묻을 자리를 찾을 때 사용하는 지관용 나침반과 내다 버리고 버려도 집으로 돌아오는 붉은 구두, 온갖 사치품을 쟁여놓던 곳간의 자물쇠 등, 오래된 골동품에 혼이 깃들어 그것의 성격을 닮아 사람을 홀리게 되는 도깨비와 그런 도깨비를 사냥해 골동품을 수집하는 사냥꾼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래된 물건이 도깨비가 되어 인간과 섞여 살아가고, 그런 도깨비를 사냥하며 골동품을 수집하는 허황된 괴담이나 판타지가 아니다. 작품 속에서 이어지는 사건들이 이야기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음과 설명되지 않는 현상, 그리고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이렇게 일상적인 삶과 섬찟한 스릴러 사이를 능란하게 누비는 묘사로 《사냥꾼 이야기》에는 이야기 이상의 힘이 깃든다. 독자는 어느 순간 도깨비는 외부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 안에서 태어나는 것인지 자문하게 된다.
조용히 스며들어 오래 남는, 한국적 정서를 담은 도깨비 이야기
이 작품 속 도깨비는 단순한 전설 속 존재가 아니다. 인간들 속에 숨어 살아가는 도깨비와 오래된 물건, 주변 인물들을 통해 도깨비보다 더 도깨비 같은 탐욕 덩어리의 인간들을 풍자하는 모티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깨비는 인간의 기억과 시간, 버려진 물건과 감정에서 태어나 우리 곁에 머무는 또 하나의 삶이기도 하다.
또한 이 작품은 현실과 환상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서사와 서서히 조여오는 불안, 인간이 외면해 온 감정들을 한국적 정서와 도시 괴담의 형식 속에 녹여내고 있다. 조용히 시작해 카타르시스를 끌어올리는 서사는 독자를 골목 깊숙한 곳으로 끌어들이고, 마지막 순간까지 진실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익숙한 일상 한가운데에서 시작되는 기묘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온 일상의 틈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그러다 익숙한 세계가 낯설게 보이는 순간, 독자는 깨닫게 된다. 어쩌면 사냥꾼과 도깨비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또한 우리가 잊고 지낸 것들은 정말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모습으로 곁에 남아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현실과 환상, 인간과 도깨비의 경계 위에서 펼쳐지는
한국형 미스터리의 새로운 얼굴
방송과 웹툰 스토리 작가로 십 년 넘게 글을 써온 임정희 작가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한 ‘이야기창작발전소 스토리창작과정’을 통해 《사냥꾼 이야기》를 준비하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오랫동안 구상하고 수집한 도깨비 자료를 한 편의 소설 속에 잘 버무려 내어놓았다. 각각의 에피소드를 통해 하나의 큰 이야기를 풀어놓는 작가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어서 또 다른 도깨비와 그를 사냥하는 사냥꾼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또 이 작품은 한국적 상상력을 통해 사라져가는 공간과 관계, 그리고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국적 색채가 강하게 녹아들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한국형 미스터리 소설의 색다른 맛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본문
귀신 골목. 정말 듣기 싫은 말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제멋대로 이곳을 귀신 골목이라고 부른다.
_ 9p
시장 입구, 가로등 아래를 지날 때 길게 늘어졌던 아이들의 그림자가 줄어들었다. 빛이 내리쬐는 방향에 따라 그림자의 크기는 늘어나고 줄어드는 게 당연한데 등에 업힌 그놈은 그림자가 아예 없었다. 사람으로 둔갑할 때는 그림자까지 스스로 꾸며내야 한다.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그림자를 완벽히 흉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_ 57p
무당은 실체가 없는 귀신은 상대할 수 있지만, 도깨비는 어쩌지 못한다. 도깨비와의 싸움은 대부분 육탄전이고 그들은 인간보다 힘이 세기 때문이다. 아무리 영험한 무당이라도 나이 든 몸으로는 별도리가 없어, 도깨비로 인한 소동은 철수의 몫이 되었다.
_ 118p
“인간이란 참말로 우둔한 존재라니까. 세상 똑똑한 척은 다 하지만 말이야.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제 눈으로 보고도 믿질 않으니 하는 소리라네.”
_ 239p
죽은 사람의 몸을 뜯어 먹으려고 몰려든 도깨비 떼가 서로를 잡아먹는 광경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살아남은, 몸집이 커진 한 놈이 시체를 차지한다. 시체의 뱃살에 머리를 처박고 썩은 살을 게걸스럽게 뜯어 먹던 도깨비가 갑자기 고개를 쳐든다.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채,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_ 290p
짐승이 부르짖는 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 도깨비의 비명이 아니었다. 철수가 내지르는 소리였다. 사냥에 성공한 포식자의 흥분된 울부짖음이었다. 뜯어낸 도깨비의 머리를 손에 쥔 철수는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온전한 짐승이 된 것처럼 본능만 가득한 울음소리가 몸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다.
_ 312p
작가 소개
임정희
십 년 넘게 방송 작가로 살았다. 링거 맞으며 방송 대본을 쓰던 중 소설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스승의 권유를 핑계 삼아 탈출했다. 글동무들이 인간 본질을 탐구할 때 귀신, 외계인, 흡혈귀 등 인간 아닌 것에 탐닉해 스승을 뒷목 잡게 했다. BokHee라는 이름의 웹툰(스토리) 작가로 활동 중이며 한국 땅에만 존재하는 도깨비에게 깊은 애정을 품고 있다.